콩과 발효
장을 만드는 콩
국가가 정한 장 담그기의 첫 단계는 콩 재배입니다. 그러나 공장에서 만드는 장은 대부분 수입 콩으로 만들고, 논에 콩을 심게 한 직불금은 정부가 국산 콩의 3분의 1 넘게 사들이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가을이면 밭에서 콩을 거두고, 그다음 일은 옛 달력이 일러 줍니다. 19세기 농사 달력을 노래로 엮은 「농가월령가」의 11월령에는 “부녀야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콩을 푹 삶고 찧어 메주를 띄우라는 것입니다. 봄이 오면 메주를 소금물에 담그고, 몇 주 뒤 그 물을 떠내 간장으로, 남은 건더기를 눌러 담아 된장으로 만듭니다.
이 과정은 이제 두 겹의 유산입니다. 한국은 2018년 장 담그기를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했고, 유네스코는 2024년 12월 3일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렸습니다. 국가유산청의 설명은 장 담그기의 과정을 차례로 적는데, 그 첫 단계가 콩 재배입니다.
그러나 장에 들어가는 콩은 대부분 한국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장류 업체가 쓴 콩 6만 1,652톤 가운데 국산은 8.1%였습니다. 그사이 논에 벼 대신 콩을 심게 한 직불금은 시장이 소화하지 못하는 국산 콩을 길러 냈고, 정부는 2026년 6월까지 2025년산 콩 15만 6천 톤 가운데 약 5만 7천 톤을 사들였습니다. 이 기사는 공식 통계와 법령, 공개된 보도를 바탕으로 논에서 장독까지 콩의 길을 따라갑니다. 농가 방문이나 인터뷰는 하지 않았습니다.
숫자로 본 콩
- 2025년 콩 생산량
- 15만 6,145톤
- 재배면적 7만 4,015헥타르. 국가데이터처, 2025년 12월 24일 발표.
- 콩 식량자급률
- 37.4%
- 2024 양곡연도 잠정치, 사료용 제외. 2027년 목표는 43.5%. 농림축산식품부.
- 장류 업체가 쓴 콩 중 국산
- 8.1%
- 2024년 6만 1,652톤 중 4,988톤. 농식품부·aT 표본조사.
- 흰콩 도매가격(킬로그램당)
- 5,715원 대 3,623원
- 국산 상품 대 수입 중품, KAMIS 2026년 10월 2일. 킬로그램당 환산은 Ag Digest 계산.

방법으로 정의된 유산
유산 목록이 지키는 것은 공급망이 아니라 관습입니다. 국가유산청은 장 담그기를 콩 재배, 메주 만들기, 장 만들기, 장 가르기, 숙성과 발효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설명하고, 메주를 띄운 뒤 된장과 간장 두 가지 장을 만든다는 점, 집안에 내려온 묵은 간장으로 여러 해 겹장을 한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습니다. 전국의 가정에서 지금도 자연스럽게 전승되는 생활관습이라는 이유로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 없는 공동체종목으로 지정했습니다.
식품 법규도 같은 선을 긋습니다. 식품공전은 한식간장을 메주를 주원료로 해 식염수 등을 섞어 발효·숙성시킨 뒤 그 여액을 가공한 것으로, 한식된장을 한식메주에 식염수를 가해 발효한 뒤 여액을 분리한 것으로 정의합니다. 어느 정의에도 콩이 어디서 자라야 하는지는 없습니다.
진열대에서 전통 방식의 장이 차지하는 몫은 작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생산실적에 따르면 2025년 한식간장 생산량은 1만 205톤으로 전체 간장의 약 3%였고, 양조간장이나 한식간장에 산분해간장을 섞은 혼합간장은 16만 4,810톤이었습니다. 한식된장은 3,002톤, 그 밖의 된장은 9만 1,261톤이었습니다.
콩은 어디에서 오나
한국은 한때 먹는 콩을 거의 다 직접 길렀습니다. 사료용을 뺀 농림축산식품부의 콩 식량자급률은 1970년 92.3%, 2000년 28.2%였고, 2017년 22.0%로 가장 낮았습니다. 2024 양곡연도(2023년 11월~2024년 10월) 잠정치는 37.4%입니다. 사료용을 제외한 수요 37만 8천 톤 가운데 국산이 14만 1천 톤이었습니다. 농식품부는 2022년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방안에서 2027년까지 43.5%를 목표로 정했습니다.
나머지는 수입이 채웁니다. 높은 담에 문이 하나 난 구조입니다. 콩의 WTO 양허관세율은 487%이지만 시장접근물량은 5%의 저율관세로 들어오고, 그중 식용 콩은 대부분 aT의 국영무역으로 수입됩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2026년 1~5월 저율관세로 수입한 식용 콩 13만 613톤 가운데 9만 5,231톤이 국영무역 물량이었습니다. 2024 양곡연도 콩 수입량은 120만 1천 톤으로, 식용 29만 2천 톤, 사료용 90만 9천 톤이었습니다.
공장이 어떤 콩을 살지는 가격이 정합니다. KAMIS에 따르면 2026년 10월 2일 도매가격은 국산 흰콩 상품 40킬로그램 22만 8,600원, 수입 흰콩 중품 35킬로그램 12만 6,800원이었습니다. Ag Digest가 킬로그램당으로 환산하면 약 5,715원과 3,623원이며, 등급은 서로 다릅니다. 2024년 식품산업 전체가 쓴 콩 가운데 국산은 6.0%였습니다. 장류 업체는 8.1%로, 같은 표본조사에서 전년의 17.7%보다 낮아졌으니 한 해 수치는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어느 콩이 들었는지는 표시가 알려 줍니다. 가공식품의 원산지 표시 규정은 배합 비율이 높은 주원료의 원산지를 적게 하므로, 된장에 든 콩은 보통 원산지가 표시됩니다. 속여 팔 만큼 값 차이가 큽니다. 2021년 특별단속에서는 메주 등 콩 가공품의 원산지 표시를 어긴 업체 60곳이 적발됐고, 그중 한 곳은 수입 콩으로 만든 된장 30.6톤을 국내산으로 속여 온라인에서 약 6억 5천만 원어치를 팔았습니다.
논으로 간 콩
국산 콩의 판도는 쌀이 바꾸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 전략작물직불제는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남는 쌀의 재배면적을 줄이려고 논에 다른 작물을 심는 농가에 직불금을 줍니다. 논콩은 2023년 헥타르당 100만 원을 받았습니다. 2024년부터는 단가가 200만 원으로 두 배가 됐고 대상도 두류 전체로 넓어졌으며, 같은 논에 밀 같은 겨울 작물을 함께 기르면 100만 원을 더 받습니다.
농가는 호응했습니다. 직불금을 받은 두류 면적은 2023년 1만 8,600헥타르에서 2024년 2만 4,300헥타르, 2025년 3만 2,100헥타르로 늘었고, 농식품부는 직불금을 받은 논의 하계 작물 덕분에 밥쌀용 벼가 약 29만 톤 덜 생산됐다고 집계했습니다. KREI가 인용한 공식 통계로 2025년 논콩 면적은 2만 6,242헥타르로, 전체 콩 재배면적의 3분의 1이 넘습니다. 전체 생산량은 단수가 늘어 0.8% 증가한 15만 6,145톤이었습니다.
유산 지정에서 과잉까지
출처에 적은 부처와 기관, 법령이 밝힌 날짜입니다. 시기가 가까운 사건이라도 서로의 원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 2017년콩 식량자급률 22.0%로 최저
- 2018년 12월 27일장 담그기, 국가무형유산 지정
- 2022년 12월 22일2027년 콩 자급률 43.5% 목표
- 2023년전략작물직불제 시행, 논콩 헥타르당 100만 원
- 2024년두류 전체로 확대, 헥타르당 200만 원
- 2024년 12월 3일유네스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 등재
- 2025년 12월 24일2025년산 15만 6,145톤, 정부 비축 6만 톤으로 확대
- 2026년 2월 25일백태 직불금, 전년 이행 농가·면적으로 제한
- 2026년 7월 13일콩나물콩 시장접근물량 2만 7,450톤으로 확대
정부가 사 주는 콩
생산이 늘었다고 콩이 저절로 공장으로 가지는 않았습니다. 농식품부는 2025년 12월 논콩 재배면적 증가로 생산 과잉이 우려된다며 2025년산 콩의 정부 비축 물량을 6만 톤으로 늘렸습니다. KREI 집계로 2026년 6월까지 정부가 사들인 물량은 약 5만 7천 톤이었고, 시장에 풀린 콩은 20.5% 줄었습니다. 6월 국산 콩 상품 가격은 킬로그램당 5,679원으로 1년 전보다 1.4% 낮았습니다.
그러자 콩을 늘리던 정책이 속도를 줄였습니다. 농식품부는 2026년 “과잉 생산 우려가 있는 백태(콩나물 콩 포함)”의 직불금을 전년도에 직불을 이행한 농가에만, 그것도 전년도 면적 안에서만 주기로 했습니다. 콩과 가루쌀 등 다른 작물의 추가 과잉 우려를 낮추겠다며 수급조절용 벼에도 직불금을 새로 줍니다. 올해 정부 비축 국산 콩 6만 5천 톤을 공급할 계획인데, 그중 2만 1천 톤은 두부·두유 업체가 수입 콩과 함께 쓸 원재료용이며, 이번 공급이 “정부 비축 재고 부담 완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KREI는 벼로 돌아가는 농가와 콩 수익성 저하로 2026년 콩 재배면적이 7.3%, 논콩은 14.3% 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 와중에 모자란 콩도 있었습니다. 정부는 올해 콩나물콩 시장접근물량이 6월 말 소진되자 7월 1만 7,450톤에서 2만 7,450톤으로 늘렸습니다.
지난 보도에서
1월, 생산 현장의 말
2026년 1월 식량작물 생산자 신년좌담회에서 나온 말입니다. 가루쌀은 밀가루처럼 빻아 쓰도록 육성한 벼로, 직불금이 콩과 함께 장려한 하계 작물입니다.
콩은 갈곳이 없고, 가루쌀은 방향성마저 잃은 상황
2026년도 전략작물직불제 계획을 보면 콩과 가루쌀은 사실상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
콩 하나에 두 가격
농가에게 국산 콩값은 이제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시장이 쳐주는 값과 정부가 얹어 주는 돈입니다. 농식품부는 2024년산 콩 특등급의 비축 매입가를 킬로그램당 4,800원으로 정했고, 논에 콩을 심으면 헥타르당 200만 원이 더해집니다. 10월 2일 국산 콩 상품 도매가격은 1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장류 업체에게 비교 대상은 킬로그램당 약 3,600원의 수입 콩이고, 어느 콩을 쓰든 원산지는 표시해야 합니다. 메주로 만드는 한식간장과 한식된장은 간장과 된장 생산량의 약 3%입니다. 국산 콩이 뚫어야 하는 시장이 바로 이곳인데, 콩을 논으로 불러낸 직불금은 벌써 줄어들고 있습니다.

“유산은 밭에서 시작하고, 공장은 항구에서 시작합니다.”
장 한 병을 읽는 법
진열대 앞에서는 두 단어가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앞면의 ‘한식’은 장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곧 메주로 옛 방식대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뒷면의 원산지 표시는 콩이 어디서 자랐는지를 알려 줍니다. 둘은 서로 다른 약속이고, 밭에 관한 약속은 뒤쪽 하나뿐입니다.
앞으로 몇 해 동안 남는 질문은 정부가 덜 사들일 때 누가 국산 콩을 살 것인가입니다. 지원을 받거나 설득된 식품기업일 수도, 아직 집에서 장을 담그는 가정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사지 않는다면 논은 다시 벼로 돌아갈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올가을 메주는 올해 거둔 콩으로 쑤게 됩니다.
뉴스 속 콩과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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