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유승현 기자]
축산업에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면서 농가에서 생산되는 데이터의 가치도 커지고 있다. 돼지의 사육·출하 기록부터 소 유전체까지 생산성 향상과 품종 개량에 활용되는 정보가 늘고 있지만, 정작 이를 생산한 농가의 권리와 활용 범위는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돈, 데이터 권리 설명 ‘전무’
양돈농가는 돼지의 입식부터 번식·폐사·출하까지 농장 운영 과정에서 다양한 데이터를 생산한다. 한돈팜스와 피그지오, 피그플랜 등 농장 관리 프로그램은 사육 현황과 생산성을 분석해 경영 개선을 돕는다. 농가가 직접 데이터를 입력하기도 하지만, 사료회사 관계자가 입력과 관리를 지원하거나 전산 서비스를 연계해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데이터 소유권과 활용 범위, 제3자 제공 여부 등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가 특정 기업 시스템에 종속되면 사료회사나 프로그램을 바꿀 때 기존 정보를 이전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충남 홍성에서 양돈농장을 운영하는 이도헌씨는 2년 전 데이터 권리 조항이 불명확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계약 수정을 요구했다. 이에 해당 업체는 ‘농가가 데이터 소유권을 가진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데이터 활용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보안 침해가 확인되면 농가에 알리도록 계약을 수정했다.
이 씨는 “해당 업체 역시 데이터를 악용하려기보다는 권리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어 계약서 작성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보였다”며 농가가 데이터 통제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한한돈협회 한돈연구소가 올해 4월부터 5개월간 전국 한돈농가 124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농가 데이터 주권 확립을 위한 실태조사’에서도 계약 관행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농가의 데이터 활용률은 50% 안팎이었으며, 서면계약을 체결한 농가는 9.7%에 그쳤다. 계약서상 데이터 권리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고 답한 농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반면 응답 농가의 90%는 데이터가 농가 소유라고 인식했으며, 98%는 데이터 활용으로 발생한 이익이 농가에 돌아오길 바랐다. 한돈연구소는 이를 바탕으로 △농가 원천데이터의 통제권 보장 △데이터 유형·목적별 규율 △목적별 동의 △데이터 이동성과 상호운용성 확보 △합리적인 편익 환원 등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농가와 기업 간 권리·의무를 명확히 하는 표준계약서 마련도 과제로 꼽았다.
“소 유전정보, 생산농가는 알아야”
데이터 접근권 문제는 한우 개량에서도 제기된다. 전북 익산에서 한우를 사육하는 이하일씨는 씨수소의 유전체 분석 결과를 해당 소를 생산한 농가에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씨에 따르면 관련 기관에 분석 결과 제공을 요청했을 때, 해당 수소가 국가 관리체계 밖에서 활용될 우려가 있어 결과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다.
한우는 우수한 유전능력을 가진 씨수소를 선발하고 정액을 공급하는 국가 단위 개량체계를 운영한다. 이 과정에서 씨수소의 유전정보는 개량사업과 정액 공급 관리에 활용된다.
이씨는 유전체 분석 결과를 농가에 제공하는 것과 해당 수소를 국가가 공식 종모우로 인정·관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봤다. 종모우의 무분별한 활용은 별도 규정으로 관리하되, 해당 수소를 생산한 농가에는 유전정보를 확인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립축산과학원 관계자는 농가의 문제 제기에 공감하면서도 “결과에는 검사 방식과 분석 항목, 결과 해석 등 여러 요소가 얽혀 있어 세부 정보를 제공하려면 기술적 검토와 절차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양돈 데이터와 한우 유전정보는 성격과 관리 체계가 다르지만, 농가가 생산하거나 제공한 데이터에 얼마나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는 공통된 과제다. 데이터 활용이 확대되는 가운데 농가와 기업·기관 간 권리와 의무, 정보 제공 범위를 명확히 하는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