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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중요농업유산은 농업·농촌의 미래를 위해 보전할 가치가 있는 각종 유무형 농업자원을 국가가 지정한 것으로, 선조들이 과거부터 이어온 전통 농사 활동 및 농촌 경관, 토지이용체계 등이 지정 대상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을 시작했다. 2026년 현재, 우리나라엔 총 20가지의 국가중요농업유산(농업유산)이 존재한다. 본지는 향후 매월 1회씩 국내 농업유산들을 소개하며 선조들이 농사 과정에서 어떤 지혜를 발휘해 왔는지, 농업유산이 오늘날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⑥ 울진 금강송 산지농업 |
[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객원기자]
동쪽으로는 바다가 길게 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태백산맥의 산줄기가 이어지는 경상북도 울진. 이곳에는 오래전 보부상들이 오가던 길이 있었다. 소금이나 미역과 같은 해산물을 봉화와 영주 등 내륙으로 나르던 길이다. 현재 ‘12령 옛길’ 또는 ‘보부상길’이라고 불리는 이 길은 걸어서 넘는 데만 3박 4일이 걸려 긴 여정에 나선 보부상들을 위한 주막과 상점도 길을 따라 생겨났다.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가용지가 부족했고, 해가 드는 시간도 짧아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살기에는 척박했다. 특히 지금의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나라에 필요한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숲의 출입과 벌채를 엄격히 관리하던 곳이었다. 이곳의 소나무는 곧고 단단하며 잘 뒤틀리지 않아 건축재로서의 가치가 높았다. 오늘날 울진을 비롯한 태백산맥 일대의 소나무를 금강송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광리에는 국가가 이 일대를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황장봉계 표석도 남아 있다.
길을 따라 터를 잡은 사람들은 벌채와 출입이 엄격히 금지됐음에도 숲을 멀리하기보다 상생할 방법을 찾았다. 허용된 범위 안에서 송이나 산나물과 같은 산림부산물과 필요한 목재를 얻고 개간할 수 있는 만큼의 농지를 일궜다. 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필요하고, 임산물도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소나무 숲을 관리하는 송계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관리하는 보계, 마을공동체를 운영하는 동계를 두고 규칙을 지키며 공동체를 유지했다.
특히 송계는 송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간벌과 가지치기, 지피물 정리 등의 일을 한다. 심현우 울진군청 산림기획팀 주무관은 “관리되지 않은 산보다 가꿔진 송이산에서 소나무와 후대림이 잘 자란다. 특히 바닥의 솔잎과 송진이 정리돼 산불이 발생했을 때 확산 속도를 늦추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송계와 보계의 기능이 산림계로 통합돼 유지되고 있고, 동계는 마을계로 이어지고 있다. 이름은 달라졌지만 숲과 마을을 공동으로 관리해 온 방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7호로 지정됐고, 2025년에는 세계중요농업유산에도 등재됐다. 농업유산의 핵심지역은 전곡리, 소광1·2리, 두천1·2리 등 다섯 마을로, 면적은 총 141.9km²에 이른다. 이 다섯 마을은 울진의 여러 마을 가운데 금강송 숲과 농업, 주민들의 삶이 이어져 온 모습을 잘 보여주는 핵심지역이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산지농업시스템은 현재 여러 위험에 노출돼 있다. 소나무재선충은 금강송 숲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울진군은 영덕군과의 경계지에서 200본 이상의 감염목을 확인하고 제거하는 한편, 주변 30m 반경의 소나무를 선제적으로 벌목하고 있다. 산불 역시 지속적인 위협이다. 여기에 주민들의 고령화와 신규 인구 유입이 없는 것도 문제다.
최영진 울진군청 산림기획팀장은 “재선충이 금강송 군락지까지 번지지 않도록 국가에서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며 “기후변화로 송이와 산양삼 등 임산물 생산이 줄고 농지의 면적도 적으니 귀농 인구가 없다. 월급제 청년농부를 두든 군에서 직접 관리하든 산지농업을 유지할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농식품부에 농업유산을 전담하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울진군도 산지농업시스템의 가치를 이어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 중이다. 핵심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임산물에 활용할 브랜드를 만들고 세계중요농업유산이라는 점도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또한 오는 31일에는 금강송면에서 산촌 음식을 주제로 이 지역의 임산물과 농산물을 주민들과 함께 즐기는 제1회 세계중요농업유산축제를 기획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숲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산림계, 마을계 주민들과 울진군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