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유승현 기자]
축산분야 공공기관 3곳의 통합 논의가 본격화됐다. 정부가 통합 방침을 발표한 지 한 달여 만에 통합 추진위원회 첫 회의를 열었지만, 정작 통합의 구체적인 구상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처우 상향 평준화를 원칙으로 삼고 일반직 전환 등 노동계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노동계는 통합의 타당성과 효과를 충분히 검토하고 고용 안정과 처우 보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생산자단체 대표 역시 현재 각 기관의 운영에 큰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통합을 통해 어떤 효율을 얻기 위해 혼란을 초래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통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비쳐 정부가 통합 명분으로 내세운 ‘농가 불편 해소’ 역시 설득력을 잃고 있다.
축산분야 공공기관 통합 추진위원회(통합 추진위)는 2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첫 회의를 열고 향후 운영계획과 소위원회 구성, 통합 기본구상안 등을 논의했다. 그동안 일방적인 추진에 반발해온 노동계는 이번에 통합 추진위에 노동자 대표가 참여하게 된 만큼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구체적인 통합안을 검토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이번 통합은 정부가 지난 9월 발표한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공공기관 DIET 2026)’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축산물품질평가원(축평원),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방역본부), 축산환경관리원(관리원) 3개 기관 통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기관별로 중복되는 현장조사와 방문 대응이 농가 불편을 초래하고, 방역·환경·품질 데이터가 분산 관리돼 개별 농장의 종합적인 상태를 진단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
“처우 상향 평준화·일반직 전환” vs “예산·추진계획 필요”
통합 기본방향에는 기관 명칭을 ‘한국축산진흥공사’로 정하고, 기관별로 다른 인사·보수 체계와 복지제도를 단계적으로 단일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보수와 복지 수준은 ‘상향 평준화’를 원칙으로 하고, 외부 위탁 가능성을 검토한다는 조건 아래 공무직의 일반직 전환을 추진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특히 방역본부는 전체 인력의 약 95%인 1230여명이 공무직으로 근무하고 있어 그동안 일반직 전환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축평원은 다른 기관에 비해 연차에 따른 임금 수준이 낮아 통합 이후 임금체계 설계도 과제로 꼽힌다. 관리원은 세종을 거점으로 근무하고 있어 통합에 따라 전국 단위 조직으로 개편될 경우 근무지 변경 등 노동자들의 불이익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통합 과정에서 고용 형태와 처우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농식품부는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해 통합에 따른 불안 요인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노동계는 구체적인 추진 계획과 예산 수립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처우 개선 등을 약속하는 것만으로는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소위원회서 통합 대상 기관 제외
통합 추진위 운영방식을 두고도 논란이 제기됐다.
통합 추진위는 총 13명으로 구성됐다. 농식품부 식량정책실장·축산정책관·방역정책국장·정책기획관 등 정부 인사 4명과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장 등 생산자·소비자단체 대표 2명, 통합 대상 기관별 임원 3명, 기관별 노동자 대표 3명, 전문가 1명이 참여한다.
통합 추진위는 통합기관 출범 때까지 수시로 회의를 열고 주요 쟁점을 사전에 논의하기 위한 소위원회도 운영하기로 했다. 소위원회는 쟁점별 세부 사항을 검토한 뒤 통합 추진위에 안건을 상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소위원회는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총 5명으로 구성되며 농식품부 축산정책관·방역정책국장과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장이 참여한다. 통합 대상 기관 관계자와 노동자 대표는 소위원회 구성에서 제외됐다.
노동계는 현안을 가장 잘 아는 기관 관계자나 노동자 대표가 소위원회에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합 추진위와 소위원회의 역할이 다르고 최종 결정은 통합 추진위에서 이뤄진다는 것이 농식품부 측 설명이다.
이제야 통합안 구상…노동계 “순서부터 잘못”
노동계는 통합의 필요성과 효과, 기관별 기능 조정 방안 등을 충분히 검토한 뒤 통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합 방침을 먼저 발표한 뒤 세부 계획을 마련하는 것은 추진 순서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농식품부는 이달부터 다음 달까지 두 달간 통합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할 계획이다. 통합 방침을 발표한 뒤 구체적인 통합 계획 마련에 들어가는 셈이다.
통합기관의 법적 기반 마련도 과제다. 현재 축평원과 방역본부, 관리원은 각각 서로 다른 법을 근거로 운영되고 있어 통합기관 출범을 위해서는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 기관별 기능과 조직, 인사·보수 체계를 어떻게 조정하고 노동계의 요구를 통합 과정에 어떻게 반영할지도 구체화해야 한다.
각 기관 노동자 대표들은 “사실상 통합 추진위에 정부 인사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향후 다수결로 의결할 경우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우려가 있다”며 “통합의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하면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기관별 임금 차이와 대규모 퇴직이 예상되는 기관 노동자들의 승진 기회, 일반직 전환 등이 유명무실하게 진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산자단체 대표로 통합 추진위에 참여한 오세진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은 “사전에 주요 축산단체들의 의견을 물었는데 대부분 반대했다”며 “각 기관이 안정화되고 있으며, 가축전염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특별방역대책기간을 앞두고 이런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무원들이 하기 어려운 현장 업무를 공무직으로 운영해왔는데, 이제와서 통합을 서두르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축산농가가 최대 이용자인 만큼 농가들의 목소리가 왜곡되지 않도록 충분히 의견을 듣고 제대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소위원회만 안건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추진위에서도 필요하다면 회의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번 통합 추진위 첫 회의를 계기로 현장과 소통하며 통합 논의를 이어가고, 내달까지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단계인 만큼 현장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생산자와 소비자, 기관 노동자 모두에게 시너지가 나는 통합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각 기관 노동자 대표들은 이날 회의에 앞서 공동 대정부 요구서를 마련하고 △통합의 정당성 및 타당성 입증 △추진 로드맵과 청사진 제시 △고용 안정 및 처우 보장 △거버넌스 구축과 소통 보장 등을 요구했다. 농식품부 장관의 확약과 서면 답변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