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으로 돌아가기

차

비탈의 녹차밭

한국의 고급 녹차는 봄 몇 주 사이, 기계가 들어가기 어려운 남쪽 비탈에서 손으로 땁니다. 그 비탈이 보성과 하동을 차의 고장으로 만들었습니다. 해외 구매자가 가루녹차를 톤 단위로 찾는 지금은 그 비탈이 걸림돌이기도 합니다.

글 최지현
7분 분량

곡선을 그리는 계단식 녹차 이랑이 언덕을 뒤덮고 있다. 비탈 중간에 활엽수 한 그루가 서 있고, 꼭대기 숲에는 붉은 단풍나무가 섞여 있다
6월, 전남 보성의 언덕을 덮은 계단식 차밭입니다. 보성의 차밭은 비탈의 등고선을 따라 조성돼 있습니다. · 제공: Joycekim77, via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CC BY-SA 3.0

한국의 차 농사는 가장 작은 잎에서 한 해를 시작합니다. 지리산 아래 경남 하동군은 찻잎을 딴 시기에 따라 녹차를 나눕니다. 군이 아주 여린 차라고 설명하는 우전은 4월 20일 무렵의 절기 곡우 이전에 땁니다. 세작은 5월 5일 무렵의 입하 전까지, 중작은 입하로부터 열흘쯤 지나 더 자란 잎으로, 거친 잎으로 만드는 대작은 5월 하순 이전까지 땁니다.

하루하루가 일종의 거래입니다. 하동군 재배 안내에 따르면 찻잎이 나무에 하루 더 머물 때마다 수량은 늘고 품질은 떨어집니다. 경사지 차밭에서는 수확이 곤란하고 능률이 낮으며, 일손 부족으로 수확이 늦어지기도 해 제때 따기가 매우 어렵다고 군은 덧붙입니다.

보성과 하동이 한국 녹차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고 농업유산 목록과 국내 첫 지리적표시에 오른 것은 이 비탈 덕분입니다. 시장이 바뀌는 지금 차 농사가 고전하는 이유도 비탈에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차밭도 찻잔도 줄었고, 기후는 따뜻해지고 있으며, 해외 구매자는 서류까지 갖춘 가루녹차를 대량으로 원합니다. 보성과 하동을 이름나게 한 바로 그 비탈이 이들 지역의 차를 대규모로 기르기 어렵게 만듭니다.

숫자 네 개로 본 한국 녹차

차 재배면적(2024년)
2,551헥타르
2007년 최고치는 3,800헥타르였습니다. 2024년 재배 농가는 2,683호(농식품부).
차 생산량(2024년)
3,685톤
건엽 기준, 2023년보다 12% 감소(농식품부).
한국 녹차 수출액(2025년)
870만 달러
약 3분의 2가 미국으로 향했습니다(UN Comtrade).
일본 녹차 수출액(2025년)
720억 9천만 엔
1만 2,612톤, 수출액의 약 80%가 가루녹차(일본 농림수산성).

비탈과 강, 그리고 안개

한국에서 차가 남부의 작물인 이유는 겨울에 있습니다. 하동군 재배 안내는 연평균 기온 13~16℃, 연 강수량 1,300mm 이상을 적지의 조건으로 들고, 최저 극기온이 영하 13~14℃ 이하로 내려가면 재배가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하동 전통차의 중심지 화개면은 지리산 아래 섬진강과 화개천이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면적의 93%가 산지이고, 야생 차밭은 산기슭 바위틈에 흩어져 있어 기계 작업이 어렵다고 군은 설명합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17년 하동 전통차농업을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척박한 산지에 1,200년 동안 적응해 왔고 참나무 숲의 부산물로 만든 퇴비인 풀비배로 차밭을 가꾼다고 소개했습니다.

전남 보성은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만나는 점을 강점으로 꼽습니다. 연평균 기온 13.4℃, 연 강수량 약 1,400mm에 일교차가 크고, 잦은 안개가 자연스러운 차광 효과를 낸다고 군은 설명합니다. 산비탈에 씨앗으로 파종해 가꾼 차라서 생산자에게는 불편하고 경영비가 많이 든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새끼줄을 기준 삼아 등고선을 따라 일군 계단식 차밭은 2018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보성과 하동을 이름나게 한 바로 그 비탈이 이들 지역의 차를 대규모로 기르기 어렵게 만듭니다.

며칠 단위로 재는 계절

등급의 이름은 곧 달력이고, 그 달력은 짧습니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이 찻잎이 참새의 혓바닥만 할 때 딴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고 풀이하는 세작은 하동군 기준으로 보름 남짓 땁니다. 보성군은 곡우 무렵에 따는 곡우차를 더해 다섯 등급으로 나누고, 우전과 곡우차는 채취를 시작한 날부터 5~7일 안에, 세작은 10일 안에 손으로 땁니다. 기계 수확을 함께 언급하는 것은 중작과 대작뿐입니다.

혹독한 겨울은 이 짧은 기간마저 앗아 갈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보도에 따르면 2021년 1월 초 최저기온이 영하 10℃까지 떨어진 한파 뒤, 3월 4일까지 보성군에 신고된 언피해 면적은 군내 녹차 재배면적 755헥타르 가운데 152헥타르였고, 군은 우전·곡우차 등 고급차 수확량이 예년보다 절반 이상 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짙은 삼나무 숲 아래 비탈에 연둣빛 차나무 이랑이 곡선을 그리고, 숲 위쪽은 짙은 흰 안개에 잠겨 있다
2017년 5월, 안개 낀 아침의 보성 차밭입니다. 보성군은 잦은 안개가 차나무에 자연스러운 그늘을 드리운다고 설명합니다. · 제공: Eugene Lee, via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CC BY-SA 3.0

하동의 차 달력

하동군이 찻잎을 딴 시기에 따라 나눈 녹차 분류입니다. 봄 등급은 첫물차에서 나오고, 그 뒤에 따는 차일수록 맛이 강하고 잎이 거칩니다. 절기 날짜는 대략적인 기준입니다.

  1. 4월 20일(곡우) 이전
    우전

    첫 싹의 아주 여린 잎. 부드럽고 향이 강합니다.

  2. 곡우부터 입하(5월 5일) 전까지
    세작

    여린 잎으로 맛과 향이 좋습니다.

  3. 입하 뒤 열흘쯤
    중작

    세작보다 잎이 더 자란 뒤에 땁니다.

  4. 5월 하순 이전
    대작

    더 굳은 잎으로 만든 거친 차입니다.

  5. 6월 중순~하순
    두물차

    맛이 강한 여름 차입니다.

  6. 8월 상순~중순
    세물차

    떫은맛이 강합니다.

  7. 9월 하순~10월 상순
    가을차(네물차)

    섬유질이 많아 모양이 거칩니다.

줄어든 차밭, 줄어든 찻잔

국내에서는 손으로 딴 봄 차의 시장이 밭에서부터 줄어들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서 차 재배면적은 2007년 3,800헥타르로 정점을 찍었고 2024년에는 2,551헥타르였습니다. 생산량은 2019년 건엽 기준 4,758톤으로 가장 많았고 2024년에는 3,685톤이었습니다. 하동군 자료로도 하동의 차 재배면적은 2012년 1,042헥타르에서 2025년 665헥타르가 됐습니다.

찻잔이 먼저 줄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14년 소비 행태 조사에 따르면 녹차 소비량은 2007년까지 늘다가 농약 문제가 불거진 뒤 줄었고, 커피 등 다른 음료 소비가 늘면서 감소 폭이 더 커졌습니다. 그 뒤 재배 농가의 90% 이상이 친환경 재배로 전환했지만 이를 아는 소비자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고 연구원은 지적했습니다. 같은 해 앞서 나온 연구원 보고서는 경사지 재배 탓에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고 국산 차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제주는 규모가 다릅니다. 2024년 제주는 46호가 535헥타르를 경작했고, 전남은 1,468호가 1,114헥타르, 경남은 1,127호가 827헥타르에서 차를 길렀습니다. Ag Digest가 계산하면 제주는 농가당 11헥타르가 넘고 육지는 농가당 1헥타르에 못 미칩니다. 오설록 브랜드를 보유한 아모레퍼시픽은 1979년 제주 도순 지역의 황무지를 개간한 것을 오설록의 출발점으로 꼽습니다.

한국의 차는 어디에서 자라는가

2024년 시도별 차 재배면적(헥타르)입니다. 보성이 속한 전남이 가장 넓고, 하동이 속한 경남이 두 번째이며, 소수의 대규모 차밭이 있는 제주가 세 번째입니다.

대한민국 도별 차 재배면적 지도전북경남전남제주

지역을 선택하면 강조됩니다.

범례 (헥타르)
  • 68–277
  • 277–486
  • 486–696
  • 696–905
  • 905–1,114
도별 차 재배면적
지역차 재배면적 (헥타르)
전북68 헥타르
경남827 헥타르
전남1,114 헥타르
제주535 헥타르

농림축산식품부 2024년 특용작물 생산실적의 시도별 차 재배면적으로, 아직 수확하지 않은 면적을 포함합니다. 이 조사에서 생산량은 건엽 기준입니다. 충남(3헥타르)과 울산(1헥타르)은 너무 작아 표시하지 않았고, 경북은 2호가 신고됐지만 면적은 집계되지 않았으며, 나머지 시도는 재배 실적이 없습니다. 시도 단위로만 표시하며 개별 농가 위치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보도에서

차 업계가 해 온 말

  • 햇빛을 강하게 받으면 테아닌이 떫은맛을 내는 카테킨으로 변하므로, 일찍 수확한 찻잎일수록 떫은맛 없이 달콤하고 부드럽다
  • 커피 시장에서 차 시장으로 소비가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 생엽 기준 하루에 2t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로서 주변 녹차 농가의 차를 수매해 말차로 만들어 내년부터 수출할 구상
완만한 땅에 고르게 다듬은 차나무 이랑이 길게 이어지고, 포장된 길과 가로등이 그 사이를 나눈다. 뒤로는 숲과 흐린 하늘이 보인다
제주의 오설록 차밭입니다. 섬의 차밭은 육지의 비탈 차밭보다 넓고 완만합니다. · 제공: lumoplank, via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CC0 1.0

북쪽으로 움직이는 선

온난화는 차를 남쪽 끝에 묶어 두던 겨울의 한계를 느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은 2025년 1월, 녹차용 차나무의 재배 적지가 지금은 제주·하동·보성으로 제한적이지만 고탄소 시나리오에서는 빠르게 늘어 2090년대에는 강원 산간 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재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는 기후적 잠재력을 그린 지도이지 미래의 차밭 지도는 아닙니다.

더위가 꼭 이득인 것도 아닙니다. 하동군 재배 안내는 연평균 기온이 16℃를 넘으면 수량은 많지만 품질이 떨어지고, 30℃ 이상에서는 수량과 품질이 모두 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기온만큼 중요한 것이 평평한 땅입니다. 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의 재배 자료는 수확 기계화 가능도를 제주 90% 이상, 보성 40% 미만, 하동 15% 미만으로 평가합니다.

국내 찻잔 너머

해외에서는 녹차 수요가 늘고 있지만, 대부분은 한국의 비탈 차밭이 공급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은 형태입니다. 일본 농림수산성 집계로 일본의 녹차 수출은 2025년 720억 9천만 엔, 1만 2,612톤으로 거의 두 배가 됐습니다. 가루녹차가 수출량의 약 70%, 수출액의 약 80%를 차지했고, 미국이 40.7%를 가져갔습니다. 농림수산성은 말차의 원료로 그늘에서 기른 덴차가 일반 센차보다 약 4.9배 비싸게 거래된다고 설명합니다. FAO에 따르면 세계 차의 절반 가까이를 생산하는 중국은 세계 녹차 수출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합니다.

한국의 수출은 작지만 늘고 있습니다. UN Comtrade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녹차 수출액은 2020년 470만 달러에서 2025년 870만 달러(약 259톤)로 늘었고, 그 가운데 약 3분의 2가 미국으로 갔습니다. 한국농어민신문 보도에 따르면 하동녹차연구소 집계로 하동군의 2024년 차광 재배 생엽 수매량은 401톤으로, 전년 117톤에서 크게 늘었습니다.

해외 구매자가 요구하는 것

해외에서 팔려면 찻잎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유럽연합은 잔류허용기준이 따로 없는 농약에 킬로그램당 0.01밀리그램의 일률기준을 적용하고, 일본 농림수산성은 자국 기준을 충족한 차도 수입국 기준을 넘지 못해 수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경고합니다. 한국 농가에게 낯선 규칙은 아닙니다. 2019년부터 모든 농산물에 적용된 농약 허용물질목록 관리제도(PLS)에 따라 잔류허용기준이 정해지지 않은 농약은 0.01ppm 이하로 관리됩니다.

유기 인증은 협정이 있어야 국경을 넘습니다. 한국이 미국(2014년 발효), 유럽연합(2015년 발효)과 맺은 유기 가공식품 동등성 인정은 국내에서 최종 가공하고 유기 원료가 95% 이상인 가공식품에 적용됩니다. 일본은 이 경로를 적극 활용합니다. 2025년 일본의 대미 차 수출량 가운데 62.8%가 동등성 제도를 이용한 유기 차였습니다.

이름의 문제도 있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시장 보고서들은 미국에서 한국산 녹차가 주로 한인 마켓에서 팔리고, 고품질 차는 대부분 일본산이며, 말차 마케팅이 일본산이라는 점을 내세운다고 분석했습니다.

“해외에서 한국 차는 비탈의 풍광보다 물량과 서류, 그리고 구매자가 이미 일본과 연결 짓는 '말차'라는 단어로 경쟁합니다.”
— 디 애그 다이제스트

현장 노트: 한국 차 라벨 읽는 법

  • 등급은 찻잎을 딴 시기를 알려 줍니다. 곡우 이전의 우전부터 5월 하순의 대작까지입니다.
  • 지리적표시는 차와 그 산지를 이어 줍니다. 보성녹차는 제1호(2002년), 하동녹차는 제2호(2003년), 제주녹차는 제50호(2008년)입니다.

남은 질문은 비탈의 찻잎을 무엇을 위해 딸 것인가입니다. 가루녹차용 차광 생엽은 톤 단위로 팔리고 기계가 들어갈 수 있는 땅에 유리합니다. 손으로 딴 우전과 세작은 그램 단위로 팔리고, 점점 귀해지는 가파른 차밭과 일손이 필요합니다. 한 비탈이 두 가지를 모두 해낼 수 있을지는 지금 농가가 차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두고 정하고 있습니다.

기후와 땅이 다시 그리는 또 다른 작물의 지도는 북쪽으로 움직이는 과수원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다른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