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냄새가 있다. 갓 튀긴 치킨, 갓 구운 빵, 그리고 그중 으뜸인 갓 짜낸 들기름·참기름. 한번 맡으면 고개가 저절로 돌아갈 만큼 강렬한 고소함이다.
햇곡식이 쏟아지는 수확의 계절, 가을. 이맘때면 방앗간에도 이 내음이 한층 짙어진다. 마을주민이 맡긴 들깨·참깨를 ‘타닥타닥’ 볶거나 푹푹 쪄내 황금빛 기름을 뽑아내는 것이다. 햅쌀로 빚은 가래떡도 김을 모락모락 내며 줄줄이 나온다. 건강한 먹거리가 산처럼 쌓이는, 농촌의 ‘보물섬’ 같은 시골 방앗간을 찾아 휘뚜루마뚜루 여행을 떠났다.
‘탁탁탁탁….’
충남 예산 ‘봄봄방앗간’. 문턱을 넘자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햇곡식을 빻는 작업이 한창이다. 한쪽에는 제분기가 쉼 없이 돌아가고 다른 쪽 찜기에선 새하얀 김이 피어오른다. 손때 묻은 오래된 절구와 키도 자리한 옛 방앗간 풍경이 정겹다. 2018년부터 10년 가까이 이곳을 지켜온 장시춘 대표(58)가 환한 얼굴로 가게 문을 연다.
“냄새 한번 맡아보고 가세요! 전통 방식으로 쪄낸 들기름이에요. 볶은 것보다 영양분이 더 풍부하답니다.”
깊고 진한 향이 퍼져나가자 사람이 하나둘 모여든다. 그중 서산에서 온 성양수씨(43)는 “매혹적인 향수 같다”며 “방앗간을 못 지나치는 참새가 됐다”고 농담을 던진다. 성씨는 참기름·들기름만큼은 꼭 방앗간에 들러 직접 짠 것을 산다. 마트 제품과는 풍미가 확실히 다르고 신선하다는 이유에서다. 채유기에서 노란 기름이 졸졸 흘러나오는 모습도 넋 놓고 볼 만큼 재미나는 구경거리다.
“이맘때는 들깨 수확철이라 기름을 짜거나 사러 오는 손님이 많아요. 봄엔 쑥으로 쑥개떡, 초여름엔 보리로 미숫가루, 늦여름부터 가을까진 건고추로 고춧가루를 주로 만들죠.”
장 대표의 말처럼 이곳의 일상은 사계절따라 원처럼 순환한다. 자루째 들어오는 농산물 종류가 바뀌는 것만 봐도 계절의 경계를 넘고 있음을 체감한다.
철마다 달라지는 작물만큼이나 가게를 찾는 손님의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한 단골이 있는데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가져와 고춧가루며, 참기름이며 타지에 사는 자식 몫까지 넉넉히 만들어달라고 자주 부탁하곤 한다. 차라리 시장에 내다 팔면 벌이가 낫지 않겠느냐는 물음엔 뜻밖의 대답을 해왔다. “고춧가루나 참기름을 자식들한테 보내주면 용돈 봉투가 훨씬 두툼해지니 괜찮아요”라고. 자식 사랑도 전하고 쏠쏠한 보답까지 챙기니, 이보다 즐거움이 남는 장사가 또 있을까.
방앗간은 동네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한다. 잠시 쉬어가라고 놔둔 의자에선 처음 보는 사람끼리도 금세 말을 튼다. 농사 정보를 나누다 전화번호를 주고받기도 하고, 흥이 나면 다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장 대표도 손님과 맺은 인연 덕에 쑥밭을 소개받았고, 샤인머스캣이나 호랑이콩 같은 작물의 판로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이야기꽃이 피는 동안에도 기계는 바삐 돌아간다. 이젠 가래떡을 뽑을 차례다. 통들깨와 찐 현미 가루를 섞어 제병기에 넣자 기다란 떡이 쭉쭉 밀려나온다. 곧장 찬물에 담가 식히니 한층 탱탱해진다. 아지랑이 같은 김이 나오는 떡을 한입 베어 물자 치즈처럼 쫄깃하게 늘어난다.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이 입안에 퍼지니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이런 별미를 수시로 맛볼 장 대표가 괜스레 부럽다.
다음은 네모나게 썬 호박 인절미에 노란 카스텔라 가루를 듬뿍 묻혀 낸다. 장 대표는 이처럼 새로운 떡을 개발하며 변화를 꾀한다. 또 다른 대표 상품은 ‘구운 찹쌀떡’이다. 직접 쑨 팥소를 찹쌀떡에 넣고 와플 기계로 꾹 눌러 굽는다. 한 어린이 손님이 ‘붕어빵 꼬리’ 식감이라고 평했다는데, 맛을 보니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토포필리아! 인간과 특정 장소 사이에 존재하는 정서적 유대감을 뜻하는 말이다. ‘방앗간’이란 단어만 들어도 엄마 손을 잡고 가래떡을 뽑으러 갔던 때가 떠오르고, 그때 온몸을 감쌌던 엇구수한 향이 코끝을 스치는 것만 같다. 장 대표에게도 ‘봄봄방앗간’은 곡식을 빻고 기름을 짜는 일터이면서 사람과의 추억을 쌓는 공간이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을 불러 모으는 정겨운 풍경만큼은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는 게 그의 마음이다.
방앗간을 찾는 발길이 예전만 못하다. 무엇이든 간편하게 ‘새벽배송’으로 주문할 수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갓 나온 떡을 호호 불어 먹고, 낯선 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까지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기성품의 무덤에 사는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방앗간에 들러볼지어다.
예산=조은별 기자 goodstar@nongm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