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한국농업신문

[뉴스팜리포트- CPTPP 농업 충격] ‘제조업 연 6.7조 증가’ 뒤 숨은 농업의 비명… CPTPP, 식량 주권 흔드나

기사 도구
보기 방식
농업 생산 연평균 7100억 감소 전망
쌀 추가 수입물량·인삼 시장·검역 쟁점

(한국농업신문= 연승우 기자) 제조업에는 시장 확대의 기회지만, 농업에는 생산 기반을 흔들 수 있는 도전이다. 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에 따른 경제적 영향 분석을 내놓으면서, 통상 확대의 이익과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가 지난 9월 28일 발표한 잠정 분석에 따르면, CPTPP 발효 후 15년간 제조업 기반 생산파급효과는 연평균 6조3000억~6조7000억 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같은 기간 농업 생산은 연평균 7100억 원, 수산업은 817억 원, 임업은 606억 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농림수산업의 생산 감소 전망치를 합하면 연간 8523억 원에 이른다.

이 수치는 협상 결과가 확정되기 전의 전망이다. 실제 영향은 품목별 개방 범위와 관세 철폐 기간, 수입물량, 검역 조건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제조업의 생산파급효과와 농업의 생산 감소액을 단순히 빼서 가입의 순편익으로 해석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분석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수출 산업이 얻을 기회만큼, 농업이 감당할 부담과 이를 줄일 대책도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는가.

쌀 양허제외? 추가 수입물량이 관건

쌀 협상의 성패는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느냐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관세를 유지하면서도 별도의 저율·무관세 수입물량을 허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 물량에 낮은 관세를 적용하는 저율관세할당(TRQ)이 핵심 변수로 꼽히는 이유다.

일본의 사례는 이를 보여준다. 일본은 CPTPP에서 호주산 쌀 등에 대해 첫해 6,000톤으로 시작해 13년 차부터 8,400톤으로 늘어나는 별도 관세할당을 설정했다. 쿼터 밖의 높은 관세를 유지하더라도 추가 시장 접근을 허용하는 방식의 협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한국의 가입 협상에서도 쌀 수출국들이 추가 수입물량을 요구할 가능성은 점검해야 한다. 다만 일본의 사례가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거나, 추가 TRQ 제공이 이미 정해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제시해야 할 방어선은 ‘쌀 관세 유지’라는 원칙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추가 쿼터를 허용할 것인지, 허용한다면 물량과 용도는 무엇인지, 국내 수급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까지 협상의 평가 기준에 포함해야 한다.

인삼도 다시 협상대에 오르나… 원료 시장까지 살펴야

인삼은 기존 FTA에서 보호해 온 민감 품목의 추가 개방 여부를 가늠할 분야다. 한국은 한·캐나다 FTA에서 인삼 등 일부 농산물을 양허제외 대상으로 두고 관세를 유지했다. CPTPP 가입 과정에서 이러한 보호 수준을 계속 확보할 수 있을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캐나다산 서양삼과 국내 고려인삼은 품종과 소비 용도 등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시장이 열리면 국내 인삼을 곧바로 전면 대체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가격 경쟁이 치열한 가공식품 원료 시장에서는 수입 여건 변화가 국산 원료 수요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검토 범위도 뿌리삼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 분말·추출물·농축액과 이를 활용한 음료·가공제품까지 살펴야 실제 경쟁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CPTPP의 원산지 누적 규정도 변수다. 회원국에서 생산된 원산지 재료를 다른 회원국에서 제품 제조에 사용할 때 역내산으로 인정할 수 있어, 여러 나라에 걸친 가공과 교역이 활발해질 수 있다. 다만 제3국에서 가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제품에 특혜관세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품목별 원산지 기준과 한국의 최종 양허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를 곧바로 불법적인 ‘원산지 우회’와 동일시해서도 안 된다.

핵심은 역내 공급망 변화가 국내 인삼 농가의 판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다. 완제품 수입뿐 아니라 국산 원료 사용량과 농가 판매가격까지 연결한 분석이 필요하다.

검역 지역화 등 사과·배도 위험

과수 분야에서는 관세와 함께 동식물 위생·검역(SPS) 규범이 중요한 쟁점이다. 병해충 유입 위험을 어떻게 평가하고, 수출국의 방역 관리 수준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따라 시장 접근 여건이 달라질 수 있다.

CPTPP는 병해충 발생 상황을 국가 전체로만 판단하지 않고 지역이나 구획의 조건을 고려하도록 규정한다. 수출국이 충분한 자료를 제출하면 수입국은 합리적인 기간 안에 평가를 시작하고, 인정하지 않을 때에는 그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특정 농장이나 시설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수입을 무조건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협정은 사람과 동식물의 생명·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도 인정한다.

따라서 ‘CPTPP 가입 즉시 사과·배 수입이 전면 허용된다’는 식의 설명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검역 조치의 과학적 근거와 평가 절차에 대한 설명 요구가 커질 수 있는 만큼, 병해충 위험평가와 현지 검증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분쟁 절차도 구분해서 봐야 한다. SPS 위원회가 모든 검역 분쟁을 발생 후 180일 안에 최종 판정하는 구조는 아니다. 협의와 별도의 분쟁해결 패널 절차가 있으며, 보고서 작성 기한도 절차의 단계에 따라 적용된다.

농가에 필요한 것은 막연한 안심도,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단정도 아니다. 품목·국가별 수입 가능성과 시기, 예상 물량, 국내 가격에 미칠 영향을 구분한 정보다. 과일 간 소비 대체와 출하 시기 중복까지 살펴야 산지의 대응책도 마련할 수 있다.

중국 가입, 가능성과 영향을 나눠 봐야

중국의 가입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변수다. 중국은 2021년 9월 CPTPP 가입을 공식 신청했다. 다만 신청만으로 가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가입 절차 개시에는 회원국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한국과 중국이 모두 회원국이 되는 상황에서는 양국 간 추가 시장 개방의 범위가 농업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과의 농산물 교역 여건이 달라질 경우 채소·과수 등 민감 품목의 경쟁 구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가입하면 모든 중국산 농산물이 곧바로 무관세로 들어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적용 조건은 가입 협상과 품목별 양허 내용, 이행 기간, 검역 요건 등에 달려 있다.

정부는 현재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분석과 중국 등 추가 가입국을 가정한 분석을 구분해 제시할 필요가 있다.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영향을 외면해서도, 최악의 상황을 확정된 미래처럼 제시해서도 안 된다.

생산 감소액 너머 비용…농촌 붕괴

농업의 부담은 생산액 감소만으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농가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재배면적과 투자가 줄고, 산지 유통·가공시설의 운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누적되면 국내 생산 기반의 회복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는 식량 주권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 식량 주권을 실질적인 정책 과제로 다루려면 수입 확대 여부뿐 아니라 국내에서 생산을 지속할 역량과 위기 때 공급을 유지할 능력을 함께 살펴야 한다.

대책 역시 피해 발생 이후의 보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민감 품목별 협상 원칙을 분명히 하고, 수입 증가에 대비한 수급 관리와 농가 소득안정 장치를 준비해야 한다. 검역 인력과 연구 기반을 확충하고, 생산비 절감과 국산 원료 판로 확대를 위한 투자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영향 분석의 가정과 품목별 결과를 충분히 공개해야 한다. 어떤 개방 조건에서 피해가 발생하는지 알아야 농가도 대책의 실효성을 판단할 수 있다.

CPTPP 가입 논의에서 제조업의 수출 기회는 중요한 판단 요소다. 그와 함께 농업 생산 기반을 얼마나 지킬 수 있는지도 협상의 성과로 평가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해야 할 것은 기대 이익의 총액뿐 아니라, 그 이익을 얻는 과정에서 농촌이 감당할 부담을 어떻게 줄이고 나눌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다.

기사, 번역, 출처 또는 데이터에 문제가 있나요?

수정 요청 제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