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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침스틸러] 팍팍한 삶 달래는 ‘돼지불백’ 한쌈…‘택시운전사’는 다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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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서울의 택시운전사가 독일 기자를 태우고 광주 시내에 진입해 겪은 이야기를 다룬다. 그 시작은 기사식당에서 우연히 들은 한마디였다. (주)쇼박스

“손님이 가자는데 택시는 무조건 가는 거지!”

1980년 5월. 영화 ‘택시운전사’(2017년, 장훈 감독)의 주인공 김만섭(송강호 분)은 녹색 개인택시를 몰며 서울 도심을 쉼 없이 내달렸다. 하지만 홀로 어린 딸을 키우며 운전대를 잡는 삶은 팍팍했다. 겨우 맨밥에 배추김치 한 조각 올려 한끼를 때우는 만섭이 안쓰러웠던 동료 기사 동수(고창석 분)는 그를 동네 ‘기사식당’으로 끌고간다.

“이모, 여기 아무거나 빨리 나오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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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돼지불백. (주)쇼박스

밥때를 놓칠세라 얼른 배를 채우려는 기사들로 식당 안은 시끌벅적하다. 동수가 사준 것은 기사식당의 영원한 대표 음식, 돼지고기 불고기 백반(돼지불백). 만섭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추장 돼지불고기를 상추 위에 큼직하게 올린다. 거기에 알싸한 마늘과 짭조름한 쌈장을 더해 볼이 터져라 한입 가득 쌈을 싸 넣는다. 매콤달콤하면서도 입에 착 감기는 고기 맛에 허기가 사르르 녹아내린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택시운전사가 모이는 곳에는 늘 따끈따끈한 소문과 숱한 정보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는 법. 만섭의 귀에도 옆자리 기사들의 대화가 번개처럼 꽂힌다.

“얼마나 준다디?” “10만원.” “아니, 어떤 바보가 하루에 택시비를 10만원이나 준대?”

어느 외국인 손님을 데리고 전남광주(당시 광주시)까지 갔다가 통금 전에 서울로 돌아오기만 하면 무려 10만원을 준다는 이야기였다. 짜장면 한 그릇이 350원, 버스 기본요금이 90원 안팎이던 시절. 10만원이면 밀린 사글세는 물론 딸아이 새 신발까지 사주고도 남을 거금이었다.

만섭은 이를 듣자마자 숟가락을 내팽개치고 기사식당을 빠져나간다. 여기서부터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운명적인 여정이 시작된다.

그가 태운 외국인은 바로 광주의 참혹한 실상을 전세계에 알리고자 목숨 걸고 찾아온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치만 분)였다. 그는 5·18의 진실을 만방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에서 영감을 얻은 인물이다.

군인이 장갑차와 트럭으로 진입로를 막아서고, 최루탄 연기 속에 시민을 향한 폭력이 쏟아지는 아비규환의 광주. 만섭은 두려움에 휩싸여 홀로 도망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가던 길, 딸에게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꼭 태워줘야 하는 손님인데”라고 전화하고는 다시 광주로 핸들을 돌린다. 그리고 마침내 피터를 무사히 공항까지 데려다주며 임무를 완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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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 수유동 ‘진미기사식당’에는 고추장 돼지불백과 함께 집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반찬이 가득하다. 사진=강재훈 프리랜서 기자

택시운전사의 이런 사명감 뒤에는, 언제나 이들의 허기진 배와 마음을 채워주는 ‘기사식당’이 있지 않았을까. 서울 강북구 수유동 ‘진미기사식당’은 1972년 서울에서 세번째로 문을 연 기사식당이다. 1970∼1980년대 서울 인구가 폭증하던 시절, 대중교통이 다 감당하지 못한 시민의 이동은 택시가 도맡았다.

땅값이 비교적 저렴한 데다 경기 북부로 통하는 관문이었던 수유동 일대에는 자연스레 택시회사가 모여들었다. 덩달아 근처에 기사식당도 속속 들어섰다. 그렇게 세월을 버텨온 이곳도 한때 손님이 줄어 위기를 맞았지만, 2015년 정익자 사장(58)이 인수하면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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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진미기사식당’을 인수한 정익자 사장은 남도식 손맛으로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난 기사들을 사로잡겠다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돼지불백을 비롯한 낙지·오징어볶음, 찌개, 생선구이와 조림까지 다채로운 메뉴를 내세웠다.

“우리집 돼지고기는 부드러워서 많이 먹어도 얹히지가 않아요.”

기사식당 음식의 또 다른 특징은 지나치게 간이 세지 않으면서도 속이 편안한 ‘집밥’ 같다는 점이다. 온종일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기사의 뱃속은 무탈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이곳은 부드러운 목심을 쓴다. 고추장 불고기처럼 양념이 들어가는 요리에는 사과와 배를 듬뿍 갈아 넣은 특제 소스에 버무려 사흘간 숙성시킨다.

이와 함께 갓 지은 솥밥에 정성 어린 여러가지 찬을 내어준다. 고기와 싸 먹을 상추와 쌈장과 마늘도 빼놓을 수 없다. 정 사장은 남도 손맛을 담아 10여가지 반찬을 직접 만든다. 식당 직원들 역시 매일 손님과 같은 식단으로 식사한다. 부족하면 얼마든지 가져다 먹을 수 있는 반찬통도 따로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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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심을 양념한 ‘진미기사식당’ 고추장 돼지불백.

이제 이곳의 독보적인 인기 메뉴이자, 영화 속 만섭이 군침 돌게 먹던 돼지불백을 맛볼 차례!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빨간 양념의 고기를 한입 먹으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자극적이거나 강렬한 매운맛 대신 은은한 감칠맛이 퍼지고, 부드럽게 씹히며 술술 넘어간다.

정갈하게 차려진 반찬들도 이것저것 집어 먹어본다. 아삭한 콩나물무침과 삼삼한 감자볶음, 입맛을 돋우는 고구마순 김치까지 하나같이 과하게 짜지 않고 순하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시원한 식혜와 아이스크림 같은 후식도 후하다.

이처럼 ‘기사식당’만의 넉넉한 인심은 고봉밥처럼 넘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네 바퀴를 부지런히 굴리며 시민의 발이 돼주는 수많은 ‘만섭’들. 그들은 지금도 기사식당에서 쌓인 피로를 훌훌 턴 뒤 힘차게 택시의 시동을 건다.

장다해 기자 daha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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